태풍 '찬투'가 지나갔다. 제주에는 도로 침수나 하천 범람, 저지대 침수 등은 발생했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천만다행이다.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태풍으로 여러가지 불편함을 겪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태풍이 불어올 때마다 반복된다는 것이다.
태풍이 올 때마다 제주도민들이 겪는 가장 큰 불편함은 '고립무원'의 섬이 된다는 것이다.
제주에 태풍주의보·태풍경보·강풍특보·풍랑주의보 등이 발효되면 항공기와 여객선은 결항이 된다. 제주를 나가지도 오지도 못하게 된다.
제주도민 중에는 집 안에 상을 당하거나 병원을 가기 위해 공항에 갔지만, 항공기와 여객선 등이 결항돼 발만 동동 구르며 제 날짜에 육지에 가지 못했던 경험들이 한두 번쯤은 있다.
기자도 예전에 부산 출장을 갔다가 항공기가 결항이 되는 바람에 이튿날 서울로 가서 제주행 티켓을 겨우 구해 온 적이 있다.
그런 일을 겪은 후 저가 항공기보다 운임이 비싸지만 아시아나 항공기만 이용한다. 이유는 멤버십 때문이다. 항공기가 결항된 후 재개되면 대기자 중 멤버십 등급이 높은 승객이 우선 탑승한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나름의 대비책으로 멤버십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태풍으로 제주를 나가지도 오지도 못하면 섬에 살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제주도민들이 태풍으로 겪는 문제 중의 하나는 '택배'이다. 다음 주가 추석이라 제주 감귤 농가와 유통 상인, 농협 등은 주문받은 감귤을 이번 주에 택배로 보내야 했다.
그러나 13일 오후부터 기상악화로 목포, 녹동, 여수 등을 오가는 화물선 운항이 중단되면서 14일부터 택배가 불가능해졌다. 우체국 택배도 16일에 마감하는 택배를 기상악화로 13일까지만 접수했다.
농가와 상인들은 선주문받은 고객들의 항의와 환불 요청으로 감귤 판매 최대 성수기인 추석 대목을 놓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택배사들은 추석 연휴가 끝난 23일부터 택배를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아직 팔지 못한 하우스감귤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극조생 감귤이 출하되면 피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태풍으로 며칠 째 화물선이 제주로 오지 못하면서 마트마다 진열대가 텅 빈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주에서 재배되는 농축산물이나 일부 상품은 재고가 있지만, 육지에서 와야 하는 공산품과 채소, 과일 등은 며칠 째 보이지 않았다.
마트 진열장이 비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만약 천재지변이나 전쟁 등으로 오랜 기간 육지에서 생필품이 오지 못하면 제주는 큰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쌀농사를 거의 하지 않는 제주 특성상 육지에서 쌀이 오지 않으면 제주도민들은 굶어 죽을 수도 있다. 실제로 1793년 제주에 흉년이 들어 6백여명이 아사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배 다섯 척에 쌀 2만섬을 제주로 보내지만 기상 악화로 모두 침몰했다.
당시 객주였던 김만덕이 쌀 5백섬을 사오면서 굶어 죽던 제주도민들이 겨우 목숨을 구했다. 제주에서 김만덕의 묘비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4호로 지정하고, 만덕상을 제정해 선행을 기념하고 있는 이유이다.
제주의 땅이 크다 보니 평소에는 섬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태풍으로 불편하면 그제사 실감한다.
인간의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고 문명이 진화된다고 해도 자연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존재이다. 폭우와 강풍이 부는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태풍도 자주 온다. 그나마 철저한 대비를 한다면 최소한의 피해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 태풍 '찬투'를 막아낸 제주의 영웅들
- 태풍 '찬투' 최근접 제주, 항공기 결항·강풍·침수 피해 잇따라
- 태풍 '찬투' 제주 강타, 하천에 고립된 운전자 긴급구조 영상
- 태풍 '찬투' 북상.. 제주는 '강풍주의보'
- [송당리에서] 당신이 산 '제주 감귤'이 맛 없는 이유
- [송당리에서] 'BTS 화보 사기'에 걸려든 제주 도민들과 검사
- 제주에서 집 구하기 ① 모르면 사기당하는 '타운하우스'
- [송당리에서] 비자림로 훼손에 앞장서는 민주당 도의원들
- [송당리에서] 화물차의 1차로 주행이 위험한 이유
- 이재명 후보가 제주항에 갔다가 깜짝 놀란 사연
- 제주 '핑크뮬리' 명소를 찾는 당신에게 드리는 간곡한 부탁
- [송당리에서] 제주 도로에서 만날 때마다 황당한 '이것'
- [송당리에서] 제주 도심에서 '야자수'를 볼 수 없다니
- [송당리에서] 제주에서 집 구하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 [송당리에서] 육지 사람들은 모르는 제주 이야기
- [송당리에서] 제주감귤이라고 다 같은 감귤은 아니다
- [송당리에서] 제주 1100도로에 눈구경 가면 안 되는 이유
- [송당리에서] 제주도민들이 택배 파업에 호응하지 않는 이유
- 월요일도 주말? 티웨이항공 '제주노선' 요금 기습 인상
- [태풍 힌남노] 제주도 전역에 태풍 경보...한라산 초속 29.1m 강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