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맞는 장동혁의 딜레마... 사과 대신 '아스팔트 우파' 결집 선택하나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갑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그날을 앞두고, 여의도의 시선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입에 쏠리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장 대표의 취임 100일은 12.3 비상계엄 1주년인 12월 3일입니다. 통상 당 대표가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갖는 관례에 비추어 볼 때, 그가 이 자리에서 계엄 사태에 대해 고개를 숙일지, 무엇보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절연'을 선언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내부 기류를 살펴보면 진정성 있는 사과나 명확한 절연 선언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 지도부가 소위 '집토끼'라 불리는 극우 강성 지지층 챙기기에만 급급하다는 지적마저 나옵니다.
장동혁 "고개 숙이면 목 부러뜨릴 것"… 지도부의 피해의식
현재 국민의힘 지도부와 친윤(친윤석열)계 인사들은 '사과 불가론' 혹은 '신중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자존심 문제가 아닌, 여당인 민주당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장동혁 대표는 지난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사과 필요성에 대해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특히 장 대표는 이후 열린 전국원외당협위원장 워크숍에서 "우리가 고개를 숙이면 고개를 부러뜨리고, 허리를 숙이면 허리를 부러뜨리고, 엎드리면 땅에 짓이기는 게 민주당"이라며 "이 싸움을 끝내려면 (민주당을) 우리의 싸움터로 끌어와야 한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송언석 원내대표 역시 말을 아끼는 모습입니다. 송 원내대표는 당내 사과 요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그 부분은 오늘 별도로 말씀을 안 드리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여러 얘기를 듣고 있다는 점만 말씀드리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스팔트 세력이 부끄럽나?"… 구미서 쏟아낸 강성 발언
장 대표의 이런 인식은 25일 오후 구미역 광장에서 열린 '민생회복 법치수호 경북 국민대회'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날 집회는 사과나 반성보다는 '결집'과 '투쟁'을 위한 자리였습니다.
단상에 오른 장 대표는 지지자들을 향해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소리치는 것을 두고 '아스팔트 세력'이라 손가락질당하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며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어 "이재명 정권은 우리의 행복을 파괴하고, 목숨처럼 생각하는 자유조차 갖지 못하게 하는 정권"이라며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던 것처럼, 우리가 다시 힘을 모아 '국민의 기적'을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강성 지지층을 '아스팔트 애국 세력'으로 치켜세우며, 중도 확장보다는 전통적 지지 기반인 TK(대구·경북) 결집에 올인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습니다.
김민수 최고위원 "이재명 대통령 앉혀서 죄송"… 사과 요구 조롱
같은 날 충남 천안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더 나아가 사과 요구를 비꼬는 듯한 발언까지 나왔습니다. 김민수 최고위원은 무대에 올라 "어제부터, 그제부터 '우리 국민의힘이 이제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한다. 들으셨나"라고 물으며 운을 뗐습니다.
김 최고위원은 "누군가 사과해야 된다면 저 김민수가 사과하려고 한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반성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보수 정당이 맨날 이렇게 꼬리 내려서 죄송하다. 이재명 같은 자를 대통령에 앉혀서 죄송하다"라며 "이재명 정권이 자유와 법치를 무너뜨리고 있음에도 무엇 하나 막지 못하고 있어 죄송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정도 사과면 되겠나? 이것 외에 사과할 게 있나?"라고 되물으며 "사과해서 이길 수 없다. 저들(정부·여당)은 단 한 번도 머리를 굽힌 적이 없다. 장동혁 대표 말씀처럼 그들은 우리가 머리를 굽히면 머리를 처박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김 최고위원이 계엄에 대한 책임 있는 사과 대신,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것에 대한 '유체이탈 화법' 사과를 내놓으며 당내 쇄신 요구를 정면으로 반박한 셈입니다.
중진 나경원도 "백 번 사과해야"… 커지는 파열음
이런 지도부의 폭주에 당내에서는 소장파뿐만 아니라 중진 의원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계엄은 분명한 불법이었다"는 인식 아래, 더 이상의 '버티기'는 공멸이라는 위기감이 감지됩니다.
나경원 의원은 25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2.3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이재명 민주당에 무기력하게 정권을 내준 것만으로도 우리 당은 국민께 백 번이고 사과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는 '사과 불가'를 고수하는 지도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입니다.
소장파인 김용태 의원 역시 25일 <KBS 1라디오 전격시사〉인터뷰에서 "아직도 국민의힘은 극한 정치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며 "'개딸'과 맞서기 위해서 '윤석열 어게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거꾸로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의원은 "내가 윤 전 대통령과 절연했다고 해서 현 지도부가 '반성이 필요 없다'고 하는 건 비겁하다"며 "보수 정치가 올바른 제자리를 찾아야만, 극단적인 정치를 깨부숴야만 많은 국민이 정치를 기대하고 희망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민주당 "반성 없는 정당, 내란 옹호 공범 자인"
여당인 민주당은 연일 강도 높은 압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민주당 한민수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계엄 1년이 되도록 책임 있는 사과도, 재발 방지 대책도 내놓지 않는 정당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논하느냐"며 "국민의힘이 끝내 사과를 거부한다면, 이는 12.3 내란을 옹호하는 공범임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맹비난했습니다.
김현정 원내대변인도 26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장동혁 대표가 계엄 사과를 요구하는 국민 목소리에 ‘귀틀막’으로 일관하더니 이제는 ‘당내 입틀막’까지 하고 나섰다"고 비판했습니다.
김 원내대변인은 "국민들은 내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여전히 내란을 옹호하고 있는 그 뻔뻔하고 염치없는 모습을 비판하는 것"이라며 "장 대표는 정당해산심판이라는 목표를 향해 폭주하고 있는 국민의힘의 기관사로 보일 뿐"이라고 직격했습니다.
장동혁 대표는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당내 반발과 지지층 이탈을 감수하더라도 과거의 잘못을 털어내고 미래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탄압' 프레임 뒤에 숨어 윤 전 대통령의 그늘에 계속 머물 것인지 결단해야 할 시점입니다.
12월 3일, 장 대표가 내놓을 메시지에 국민의힘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고개를 숙이면 목이 부러진다"는 장 대표의 인식과 "이재명을 대통령 만들어 죄송하다"는 김민수 최고위원의 발언을 볼 때, 국민이 기대하는 '속 시원한 사과'와 '과감한 결별'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반성 없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습니다. 12.3 계엄 1주년, 국민의힘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여당인 민주당의 공세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보수 정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