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사는 제주 구좌읍 송당리는 중산간 지역으로 굉장히 외진 마을이다. 십여 년 전에만 해도 택시를 타고 송당에 가자고 하면 "육지분이 어떻게 송당에 사느냐"라고 물을 정도였다. 제주 도민들도 거의 오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 마을에 속한다.
오름 외에는 볼 게 없는 산골 마을이었던 송당이었지만, 30년 전에는 일확천금의 꿈으로 뒤덮인 곳이었다. 바로 온천이 터졌기 때문이다.
1990년 한 개발회사가 송당리에서 암반 작업 중 온천공을 확인했고, 제주도에 온천을 발견했다고 신고했다.
1994년 제주도는 세화리와 송당리 일대를 온천법에 따른 온천원보호지구로 지정했다. 당시 (주)제주온천은 세화와 송당리에 땅을 가진 토지주들이 만든 조합과 함께 온천 개발 사업 승인을 받고 온천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제주도는 난리가 났다. 무려 총사업비 1조5000억원을 투입해 71만평에 특급 관광호텔과 온천장, 식물원, 워터파크를 짓기만 하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송당리에는 오름이 많고,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마을이다. 그러나 경제적 여건은 그리 좋지 않았다. 원래 주변이 모두 목장지였던 탓에 농사도 쉽지 않았다. 제주에서는 흔하다고 하는 감귤밭도 송당에는 없다.
볼 것이라고는 오름 밖에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온천개발 사업을 한다고 하니 일확천금의 꿈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기획부동산도 달려들었다. 한 필지를 수십 명에게 쪼개 팔았고, 매일 땅을 보러 육지 사람들이 오기도 했다.
금방이라도 온천이 개발될 것 같은 사업은 터파기 작업만 하다가 이마저도 2004년에 공사가 중단됐다. 사업 만료 기간인 2010년까지도 공사는 재개되지 않았고, 결국 2011년에는 사업시행이 취소됐다.
사업이 부진한 이유는 자금난과 내부 분쟁이었다. 온천개발 시공사로 나선 곳은 신라개발이었다. 신라개발 이준용 회장은 김무성 전 대표와 사돈이다. 공사가 중단된 이듬 해인 2005년에 터진 뇌물 사건으로 이준용 회장이 구속됐다.
당시 뇌물사건에는 우근민 전 지사와 아들, 조합장, 지역방송사 국장, 용역회사 대표 등 지역 유력가들이 연루돼 제주 지역이 떠들썩했다. 온갖 구설수가 터지고 불협화음이 생기면서 온천개발 사업은 흐지부지 됐다.
제주도는 온천 개발 사업이 진행되지 않자 1990년에 승인했던 온천발견 신고를 2020년에 취소 통보했다. 그러자 개발 시행사인 (주)제주온천은 2022년에 온천 발견 신고 수리 취소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온천사업은 또다시 소송전으로 번질 양상이지만, 개발 시행사가 승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1990년 온천 발견 이후 32년 만에 세화·송당 온천 개발 사업은 완전히 물거품이 돼버렸다.
온천개발사업이 끝나고 남은 것은 무엇일까? 지하 700m까지 오염된 온천관정과 오름 주변을 흉물로 만든 파헤친 땅, 기획부동산에 속아 샀던 아무 가치 없는 땅문서뿐이었다.
온천만 개발하면 무조건 돈을 벌 수 있다는 일확천금의 꿈은 이제 사라졌다. 자연 보전과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도가 세화·송당 온천 개발 사업 백서를 만들어 실패를 교훈 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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