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지역 보금자리지구 지정에 관여했다면 바로 후보를 사퇴하겠다. 보금자리지구 지정에 관여하는 지시를 받았거나 압력받은 걸 경험한 서울시 직원과 엘에이치 직원이 있다면 양심선언 해달라. 한 분이라도 제가 관심을 표하거나 압력이 있었다는 분이 있다면 바로 후보를 사퇴하겠다.
지난 3월 16일 야권후보 TV토론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자신에게 쏟아진 내곡동 땅 투기 의혹에 대해 보금자리지구 지정에 관여했거나 양심선언이 있다면 바로 후보를 사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오 후보의 사퇴 배수진 발언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내곡동 땅 투기 의혹을 가라 앉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안 후보 또한 토론에서 공격보다는 오 후보의 투기 의혹을 해소시키려는 차원에서 질문을 던졌다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22일 안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고 "내곡동 문제가 확산되고 있다. 새로운 사실이 더 밝혀지고 당시 일을 증언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야권 후보가 사퇴한 상태에서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예언(?)을 했습니다.
야권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 직전에 일부러 내곡동 땅 투기 의혹을 다시 불러일으켰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나왔습니다.
당시 측량팀장 "오세훈, 현장에 있었다"
28일 <KBS 뉴스9>은 오세훈 후보 부인과 처가 소유의 서울 내곡동 땅에 대한 측량 당시 오세훈 후보가 현장에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KBS>는 당시 직접 측량을 했던 국토정보공사 측량팀장이었던 류모씨의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류 씨는 "현장에서 오세훈 후보를 봤다. 측량이 끝날 때쯤 하얀색 상의에 선글라스를 끼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3월 26일 <KBS> 뉴스에서도 내곡동 땅을 경작했던 사람들은 "오세훈 씨가 키가 크잖아요. 선글라스를 딱 끼었는데", "제가 아, 오 후보님 아니시냐고, 그래서 이야기 다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측량팀장이었던 류씨는 "선글라스를 벗어서 오 후보인 것을 알아봤고, (자신이) 먼저 인사를 했다. 측량이 끝난 뒤 오 후보와 또 다른 입회인에게 도면을 놓고 결과를 설명했다. 토지에 특별한 사항이 없어서 설명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 오 후보의 반응은 "알았다"였다"고 밝혔습니다.
류씨는 "오세훈 후보가 워낙 유명인이라 기억이 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시 오세훈 후보는 부동산 광고에도 출연하고 배우 송일국씨와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씨와 통영 국제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출전하는 등 방송에 여러차례 얼굴이 나왔습니다.
오 후보는 2005년 6월에는 여론조사에서 서울시장 후보 1위로 나오는 등 뉴스에서 빠지지 않는 정치인이었습니다.
만약 오 후보가 측량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선거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오 후보 부인과 처가 땅에 대한 측량은 SH 내곡동 개발용역 착수 9일 전이었기 때문에 투기 의혹과 밀접한 연관성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측량에 참석했다는 처남, 그날 경희의료원 행사장에 있었다
오세훈 후보 측은 <KBS> 보도에 대해 “오 후보는 2005년 당시 토지측량 현장에 있지 않았고 측량이 이뤄진 사실조차 몰랐는데도 KBS가 악의적 허위사실을 보도했다”며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후보자 비방 등의 혐의로 선대위 명의 고발장을 제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 후보 측은 “당시 측량을 의뢰하고 입회했던 자는 오 후보의 큰처남 송모 교수 등 처가인데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오세훈’이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국민의힘 선대위는 측량에 참석한 사람은 오 후보가 아니라 처남이라고 주장하지만, 당시 <MEDWORD>가 보도한 뉴스를 보면 송모 교수는 다른 곳에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2005년 6월 13일 측량에 입회했다는 오 후보의 큰 처남인 송모 교수는 이날 오후 1시 30분부터 5시까지 열린 경희의료원 '팀장급 병원경영 MBA과정 수료식'에 참석했습니다. 특히 송 교수는 이날 감사패까지 받아서, 내곡동에서 경작인들과 점심을 먹고 경희의료원까지 갔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오세훈, 중도 사퇴? 끝까지 선거 치를 가능성 높다
민주당 김태년 당 대표 직무대행은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오 후보가 내곡동 땅 관련 양심선언이 나오면 사퇴하겠다 선언한 바 있는데, 의혹에 개입·관여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자신의 발언에 이제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정치인이 ‘사퇴'를 언급하며 배수의 진을 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진짜 억울해서, 또 하나는 정치적인 노림수입니다.
오세훈 후보가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할 때에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투표자는 33%를 넘지 못해 오 후보가 서울시장직을 사퇴했습니다.
내곡동 투기 의혹이 나오자 오 후보는 억울하다면서 ‘사퇴'를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둘씩 밝혀지는 사실만 보면 억울함보다는 정치적 노림수에 가까워 보입니다.
오 후보가 안철수 후보의 예언(?)처럼 후보직을 사퇴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이미 서울시장 당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사퇴했다가 지금의 야권에서 팽 당한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사퇴하면 대선은 꿈도 못 꾸고 정치에서 완전히 은퇴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중도 사퇴 대신 끝까지 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다만, 본인 스스로 '사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놓았기에 서울시장에 당선되더라도 거짓이 밝혀지면 후폭풍은 지금보다 더 거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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