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유출 불안에 탈퇴 러시... 전자상거래법 개정됐지만, 쿠팡 여전히 '해지 방해'

▲  국내 최대 이커머스 업체 쿠팡에서 경제활동인구 2969만 명을 넘어서는 역대 최대 규모인 3370만 개의 고객 계정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 1조 원대 과징금 등 엄벌 요구가 나오자 정부가 실정에 맞게 엄중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3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본사 모습.
▲ 국내 최대 이커머스 업체 쿠팡에서 경제활동인구 2969만 명을 넘어서는 역대 최대 규모인 3370만 개의 고객 계정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 1조 원대 과징금 등 엄벌 요구가 나오자 정부가 실정에 맞게 엄중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3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본사 모습.

최근 쿠팡에서 발생한 대규모 고객 정보 유출 사고 이후 회원 탈퇴를 결심한 소비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마음을 먹고 탈퇴를 하려다 분통을 터뜨리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된 셈입니다. 결국 정부 당국이 칼을 빼들었습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4일 쿠팡이 설정한 계정 탈퇴 절차가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행위인 '이용자의 해지권을 제한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사실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집니다.

쿠팡 탈퇴? 앱 → PC 버전 이동 → 설문조사 등 6단계 거쳐야 가능

▲ 쿠팡 회원을 탈퇴하려면 앱에서 PC로 이동해야 가능하다. © 쿠팡 앱 갈무리
▲ 쿠팡 회원을 탈퇴하려면 앱에서 PC로 이동해야 가능하다. © 쿠팡 앱 갈무리

쿠팡의 회원 탈퇴 절차를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한마디로 '고난의 행군'입니다. 스마트폰 앱에 익숙한 사용자라도 탈퇴 버튼을 찾는 것부터가 난관입니다. '마이쿠팡' 탭에서 '회원정보 수정'을 누르고, 다시 보안 비밀번호를 입력해 진입한 뒤에야 '회원 탈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객관식과 주관식 설문조사 등 무려 6단계를 거쳐야 쿠팡 회원에서 탈퇴할 수 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앱 내에서 모든 절차를 끝낼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점입니다. 일부 서비스나 결제 수단이 연동된 경우 "PC 환경에서 진행해 달라"는 안내 하나로 앱에서의 탈퇴를 원천 봉쇄합니다.

모바일 쇼핑이 전체 거래의 80%를 차지하는 시대에, 탈퇴를 하려면 굳이 컴퓨터를 켜고 웹사이트에 접속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가입할 때는 간편 결제니 뭐니 하며 1초 만에 승인하더니, 나갈 때는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라며 "결국 귀찮아서 탈퇴를 포기했다"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이러한 쿠팡의 행태는 전형적인 '다크 패턴(Dark Pattern)'입니다. 다크 패턴이란 사용자가 의도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하는 눈속임 상술을 말합니다. 쿠팡은 탈퇴 과정에서 끊임없이 "지금 떠나면 적립금을 잃습니다", "무료 반품 혜택이 사라집니다"라며 소비자의 죄책감이나 손실 공포감을 자극합니다.

쿠팡은 지난해 와우 멤버십 월 회비를 인상할 때도 이 같은 다크 패턴 마케팅을 시행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당시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보도자료를 통해 “멤버십 해지가 가입 절차에 비해 복잡한 시스템이며, 와우 멤버십을 인상하면서 멤버십 연장 동의 버튼을 구매 버튼에 합쳐두고 해지 시에도 어려운 문구를 사용하는 등 소비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에도 시민사회는 “쿠팡은 멤버십 해지 절차를 간소화하고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소비자가 이해하기 쉽게 구성해 더 이상 소비자 혼란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올해 2025년 2월 14일부터 개정 전자상거래법이 시행되었다는 점입니다. 개정법은 무료 서비스 후 유료 전환 시 소비자의 명확한 사전 동의가 필요한 '숨은 갱신', 가입은 쉽고 탈퇴는 어렵게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취소 방해' 등 6가지 유형의 다크 패턴을 명백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법대로라면 쿠팡의 이러한 복잡한 탈퇴 절차는 시정되었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쿠팡은 여전히 법망을 피해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법 조항의 '교묘한 해석'을 지적합니다. 현행법은 소비자의 선택을 '현저히'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데, 쿠팡 측은 여러 단계의 질문을 던지는 것을 '소비자에게 혜택 소멸을 안내하는 정보 제공 절차'라고 주장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크 패턴으로 얻는 기업의 이익이 법 위반 시 부과되는 과태료보다 훨씬 크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힙니다.

정부의 이번 조사가 보여주기식 행정에 그칠지, 아니면 소비자가 겪는 '해지 감옥'을 부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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