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군무원연대 A씨가 호소한 불합리한 문제들... "총 안 쏘는 것 빼곤 군인과 똑같아"
"우리는 (국군) 50만 명 수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전투병 위주 현역 군인은 35만 명을 유지하고 경계 인력 등 비전투 분야 15만 명은 전부 아웃소싱하겠다.” (2025.9.30. 안규백 국방부 장관)
국방부가 병력 감소의 대안으로 '군무원 15만 명 시대'를 예고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청사진 뒤에는 '그늘'도 있습니다. 민간인 신분인 군무원에게 군복과 방탄모, 방탄조끼를 입히고, 심지어 두발 단속까지 하는 '군무원의 군인화'를 두고 군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지난 28일, 익명을 요구한 전국군무원연대 관계자 A씨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가 털어놓은 군무원들의 현실은 '직장'이 아닌 '또 하나의 내무반'이었습니다. 군무원들이 호소하는 불합리한 처우와 문제를 정리해봤습니다.
민간인 기술자에게 '두발 단속' 하는 군대
"군무원은 총을 쏘지 않는 것 빼고는 군인과 똑같았습니다. 아니, 이제는 당직 사관에 전면 투입되면서 총기 탄약 관리 교육까지 받습니다. 그런데 처우는요? 2023년 기준으로도 군인보다 월 80~100만 원이나 적습니다. 관사 미지급과 각종 수당 차별로 현재 그 격차는 훨씬 더 벌어졌습니다." (전국군무원연대 관계자)
A씨는 현재 군무원들이 겪는 가장 황당한 사례로 '두발 단속'을 꼽았습니다. 군무원은 엄연한 민간인 기술·행정 인력입니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이들을 군기 단속 대상으로 삼아 군인과 똑같은 두발 규정을 강요합니다. 이를 어기면 징계까지 내리는 촌극이 21세기 대한민국 군대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처우와 평가는 더욱 심각합니다. 30년 차 6급 주무관을 갓 임용된 소위나 중위가 평정하는가 하면, 성과상여금 등급 산정 시 군인과 통합해 평가하기도 합니다. 지휘관이 군인이다 보니 군무원은 늘 뒷전으로 밀려 낮은 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A씨는 "한 해 2000명 이상이 면직하고 있으며, 면직자의 88%가 임용 3년 이내의 신규 채용자"라며 "군무원 조직은 지금 붕괴 직전"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당직 근무, 유격 훈련, 행군에 동원되지만 '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당한 보상은커녕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헌재 "군무원은 민간인" 못 박았는데... 국제법 무시한 국방부의 위험한 '전투요원화'
더 치명적인 문제는 기술직으로 임용된 군무원들을 '전투원'으로 만드는 국방부의 정책이 국내법과 국제법을 모두 위반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입니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판례(2005헌마1275)를 통해 군인과 군무원의 신분을 철저하게 구분한 바 있습니다. 헌재는 "군인은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반면, 군무원은 정비·보급·행정 등을 담당하는 민간 인력"이라며 "책임, 직무, 신분 및 근무 조건이 상이하다"고 판시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러한 사법부의 판단을 무시한 채, 민간인인 군무원에게 각종 군장류를 지급하고 심지어 총기 지급 계획까지 세우는 등 '전투요원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제법적으로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제네바 협약상 군무원은 민간인입니다. 민간인이 전투 행위에 가담하면 포로로서 보호받지 못합니다. 적군에게 잡혔을 때 정식 군인이 아닌 '불법 전투원'이나 테러리스트로 간주되어 즉결 처형될 위험도 있습니다.
"GOP 초소 순찰에 군무원이 들어갑니다. 잠수함 시운전 지시까지 내려왔다가 현장의 거센 반발로 보류된 상태입니다. 탄약고 경계도 섭니다. 국방부의 행태는 제네바 협약과 국제전시법을 위반한 행위이며, 전쟁 시 군무원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전국군무원연대 관계자)
관계자는 국방부가 병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헌재 판결마저 무시하고 민간인인 군무원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15만 군무원? 대화가 먼저다"... 국방부의 '불통'
지난 9월 국방부 장관은 현역 군인 35만 명, 아웃소싱 인력 15만 명으로 50만 대군을 유지하겠다는 구상을 밝혔습니다. 이 '아웃소싱 15만 명'은 현재 편제상 4만 7천 명인 군무원을 대폭 늘려 채우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전국군무원연대 관계자는 병사가 줄어든 자리를 '값싼' 군무원으로 때우려는 꼼수라고 꼬집었습니다.
전국군무원연대 측은 "지금 있는 사람들도 다 떠나는데 15만 명을 어떻게 채우냐"고 반문합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대화입니다.
"우리는 노동조합도 못 만들게 막아놨습니다. 대화할 창구가 없습니다. 국방부는 군무원을 국방의 파트너가 아니라, 마음대로 부려 먹고 징계할 수 있는 하인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군무원연대 관계자)
연대 측은 무조건적인 인원 확충 이전에, 군무원을 군사지원청으로 분리하거나 비전투 업무를 명확히 하는 등 제도적 개선과 소통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느낀 점은 군무원들의 배신감이 극에 달해 있다는 것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국민 주권'을 이야기하는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 시대가 왔지만, 군대라는 담장 안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한편, 국방부는 군무원 처우 개선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군무원 종합발전 계획을 마련 중"이라고 언론에 밝힌 바 있습니다.
기술직 공무원을 뽑아놓고 "너는 군인이다"라고 강요하는 나라. 그러면서 전쟁터에서의 안전은 보장해주지 않는 나라. 이것이 2025년 대한민국 국방의 현주소입니다. 국방부는 15만이라는 숫자에 집착하기보다, 지금 현장에서 절규하며 떠나는 군무원들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