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선 '배신자', 부산에선 '빨갱이'... 갈 곳 잃은 양향자의 '슬픈 구애'

5.18 묘역서 문전박대, 부산선 모욕당한 '상고 신화'... 혐오에 굴복한 생계형 정치의 비극

2025-11-25     아이엠피터(임병도)
▲ 22일 부산 중구 광복중앙로에서 열린 국민의힘 ‘민생회복 법치수호 국민대회’에서 발어하는 양향자 최고위원 © 국민의힘유튜브 갈무리

"저 부산 며느리입니다. 내려가라고 자꾸 그러시는데..."

지난 22일, 부산 중구 광복중앙로에서 열린 국민의힘 장외 집회. 연단에 오른 양향자 최고위원의 표정을 보면 얼굴은 웃고 있지만, 목소리는 당황한 듯 떨리고 있었습니다. 보수의 심장이라는 부산 한복판에서, 그것도 자당의 행사에서 그는 환호가 아닌 거센 야유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객석 곳곳에서는 "전라도 빨갱이", "민주당 프락치", "연단에서 내려가라"는 고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호남 출신으로서 보수 정당의 지도부에 입성했지만, '콘크리트 지지층'에게 그는 여전히 이방인이자 배척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난감한 상황에서 양 최고위원이 택한 돌파구는 '정면 반박'이나 '설득'이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을 향한 혐오의 언어를 스스로 긍정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저는 전라도 사람, 빨갱이라고 해도 할 말 없다"... "원래 속이 빨갛다"

양 최고위원은 야유를 쏟아내는 군중을 향해 "저는 전라도 사람 맞다. 저한테 빨갱이라고 해도 저는 할 말이 없다"며 "저는 원래부터 속이 빨갰다. 삼성에서 30년 넘게 일하면서 이곳 영남분들과 함께 일하면서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는 그 각오 하나로 죽을 만큼 일해왔다"라고 외쳤습니다. 자신을 비하하는 '빨갱이'라는 멸칭을 '국민의힘(빨간색)에 대한 충성심'으로 억지 포장해 받아친 것입니다.

그는 이어 "대장동 항소 포기도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우리 국민의힘 당원 여러분께서 화를 많이 내고 있다"며 대여 공세에 열을 올렸고, "우리 이겨야 한다. 우리끼리 손가락질하면 안 된다"고 호소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는 청중을 향해 "부산 분들은 정말 따뜻하다. 부산 분들은 정의롭다. 부산 분들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사람"이라며 듣기 민망한 찬사를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생존을 위해 굴욕을 감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싸울 수 없어 어쩔 수 없었다"는 이상한 해명

논란이 확산하자 양 최고위원은 24일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해명했습니다. 그는 "한쪽에서는 '전라도 빨갱이라서 내려가라' 하고, 다른 쪽에서는 '한동훈파니 내려가라'고 했다"며 당시 현장의 살벌했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이어 "제가 거기서 아니라고 싸울 수도 없고, 일단은 연설을 해야 되니 '어쩔 수가 없다'는 마음에서 한 이야기"라고 털어놨습니다. 지난 8월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대구·경북 당원들로부터 똑같은 모욕을 당했다는 사실도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해명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제1야당의 수준과 양 최고위원의 빈곤한 철학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자백에 가깝습니다.

호남 출신 정치인이 호남을 비하하는 '빨갱이' 소리를 들었다면, 더욱이 그것이 헌법 가치를 수호해야 할 공당의 당원 입에서 나왔다면, 그 자리에서 "지역 혐오를 멈추라"고 꾸짖는 것이 정치인의 도리입니다. 하지만 양 최고위원은 그 혐오에 굴복하고, 심지어 동조했습니다.

고향 광주에선 문전박대 당한 '상고 신화' 양향자 

양향자 최고위원의 정치 이력을 되짚어보면 이번 발언은 더욱 씁쓸함을 남깁니다. 그는 '상고 출신 삼성전자 임원'이라는 신화적인 스토리로 지난 2016년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입 인재 1호로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이후 민주당 최고위원을 거쳐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텃밭인 광주 서구 을에 공천돼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하지만 보좌관 성 추문 의혹 등으로 민주당을 떠났고, '한국의희망' 창당을 거쳐 국민의힘 지도부에 입성했습니다.

양향자 최고위원의 처지는 '사면초가'입니다. 불과 3주 전인 지난 11월 6일, 그는 장동혁 대표와 함께 야심 차게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았다가 "내란 옹호 정당 물러가라"는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혀 19분 만에 쫓겨났습니다.  (관련기사: "장동혁 안 돼" 5·18 묘역 막아선 시민들...국힘 지도부, 참배 무산

장동혁 대표와 함께 광주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것은 정치적으로 아픈 기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풀이를 위해 타지에서 고향의 아픔을 웃음거리나 충성 맹세의 소재로 파는 것은 '호남 출신 보수 정치인'이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고향 광주에서는 '배신자'라며 문전박대 당하고, 자신이 선택한 보수 정당의 텃밭 부산에서는 '전라도 빨갱이'라며 손가락질받는 신세. 이것이 '상고 신화', '영입 인재 1호' 양향자의 현주소입니다.

양 최고위원은 "부산 며느리"를 자처하며 "부산 분들은 따뜻하다"고 치켜세웠지만, 정작 그 따뜻함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혐오하는 이들에게 "속이 빨갛다"며 읍소해야 하는 그의 모습은 '보수 혁신'이 아니라 '생계형 정치'의 비루함만을 남겼습니다.

혐오에 맞서지 못하고 혐오의 언어를 입은 정치인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금이라도 "빨갱이 소리 들어도 할 말 없다"던 자신의 말을 거두고, 자신을 향한 돌팔매질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