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당리에서] 제주도민들이 택배 파업에 호응하지 않는 이유
CJ대한통운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택배 대란이 벌어지자 제주도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단순한 불편함이 아닌 생존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제주 감귤 농가들은 설과 추석이 대목이다. 특히 만감류가 출하되는 설 명절은 1년 농사 중 가장 큰 매출을 올리는 시기이다. 그런데 택배 파업으로 감귤 판매와 배송에 차질을 빚고 있다.
시장 점유율이 50%가 넘는 CJ 대한통운 파업으로 택배를 보낼 수 없자 농가들은 우체국으로 갔다. 일반 택배사에 비해 배송비가 비싸도 감귤을 배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아침 일찍 우체국에 가도 대기번호만 3~4백명이 훌쩍 넘는다. 우체국도 마감 시간이 있어 기다린다고 접수를 다 받지도 않는다. 우체국 앞에 감귤 박스를 쌓아 놓고 발을 동동 굴러봐도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파업을 하지 않는 다른 택배사에 연신 전화를 걸어 1~20 박스라도 받아 달라며 애걸복걸한다. 차에 감귤 박스를 싣고 이곳저곳을 다녀도 받아주는 택배사가 거의 없다.
겨우 겨우 택배를 보내도 문제이다. 육지에서도 택배 파업으로 배송이 되지 않는 지역이 있어 일명 '옥뮤다 삼각지대'(옥천 허브 터미널. 택배가 이곳에서 배송이 되지 않아 생긴 별명)에서 움직이질 않는다.
설 명절에 보내는 감귤은 한라봉, 레드향, 천혜향 같은 만감류이다. 일반 노지감귤에 비해 가격이 높다. 제대로 배송이 되지 않아 상하거나 파손되면 반품이나 환불을 해줘야 해서 손해가 크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도민들이 택배 파업을 바라보는 눈길이 마냥 곱지가 않다. 또 파업이냐며 화를 내기도 한다.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 입장에서도 억울하다. 파업의 원인이 사회적 합의를 어긴 사측에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이어지자 택배사와 노동자, 시민사회와 정당, 정부 관계자들이 참여해 ''택배기사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 합의문'을 발표했다.
사회적 합의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이 바로 '분류작업'이다. 택배 기사들은 임금도 받지 않고 하루에 몇 시간씩 택배 분류 작업에 동원됐다. 오전부터 시작된 분류 작업으로 진이 빠진 기사들은 정작 중요한 배송을 12시나 되어야 출발한다. 당연히 배송은 밤늦게까지 해야 한다.
다른 택배사들은 합의문 발표 이후 분류작업에 별도의 인력을 채용해 배치했다. 그러나 CJ대한통운은 여전히 택배 기사들을 분류작업에 동원했다.
노조 측은 "택배 기사 과로사 방지를 위해 총 5천억원의 택배비 요금 인상분 중 3천억원을 CJ대한통운의 이윤으로 빼돌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주 농가들도 택배 노동자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감귤 수백 박스를 픽업해주고 배송까지 해주니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생존이 달려 있다 보니 선뜻 파업에 동의하기 어렵다.
비난의 화살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어긴 사측으로 향해야 한다. 사측이 제대로 이행했다면 파업이 일어날 이유가 없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과 마음에서는 천불이 나는 농가들과 정당한 파업에도 불구하고 비난받는 노조원들을 보면 안타깝다.
사회적 합의를 어긴 사측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함께 5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가진 CJ대한통운의 독점을 막을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